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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병신과 머저리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북클럽 [1인용 사막] 인제 갑니다. 새삼스럽다구요? 하지만 그제 밤 선생님은 제가 이제 정말로 떠나간다는 인사말을 하게 해주지도 않으셨지요. 그건 선생님께서 너무 연극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라시겠죠. 저를 위해 축복해주시라고는 하지 않겠어요. 다만 안녕히 계시라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했어야 했고, 그걸 못했기 때문에 다시 이런 연극을 하는 거예요. 결혼식을 하루 앞둔 신부의 편지라고 겁내실 필요는 없어요. 어떤 일도 선생님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으셨고, 저는 선생님에게 책임을 지워보려는 모든 노력에서 한번도 이긴 적이 없으니까요. 결국 선생님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어요. 혹은 처음부터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이미 책임 있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어요. 감정의 문제까지도 수식을 풀고 해.. 더보기
빼앗김의 방관 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 빚짐을 감당할 수 없다, 故박혜정 - 이혜경, 길 위의 집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인기는 사진 뒤에 끼워둔, 조그마하게 오려둔 종이를 꺼냈다. 시사 잡지에서 오려낸 글귀. 그때 그 자리에서, 며칠 동안의 부재, 다시 또 그런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 목소리의 이물스러움을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아는 인기를 가격한 글귀. 지난 봄에 투신한 여학생이 남긴 유서의 일부분.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살아감의 아픔을 함께 할 자신 없는 자, 부끄러운 삶일 뿐 아니라…….이 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 부당함에 빼앗김의 방관.더 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 더 이상 죄지음의 빚짐을 감당할 수 없다…….─故 박혜정의 유서에서 _이혜경, 『길 위의 집』 中 더보기
11월 13일, 故전태일,『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어디서 얻어쓴 건지 기름에 쩔은 운전수 모자를 쓰고, 바지는 군복바지에 흰 고무신을 신었네. 런닝샤쓰는 구멍이 벌집처럼 뚫린 것을 입고 오른 손엔 목장갑을 끼었는데, 손가락은 다섯 개가 다 나오고 손바닥 부분만 장갑구실을 하는 것일세. 얼굴은 일을 할 때나, 쉴 때나 꼭 마도로스가 지평선을 바라보는 그런 표정일세. 그저 무의미하게, 사물을 판단하지 않고 사는 사람 같았네. 삽질을 하나 점심을 먹으나 시종 무표정일세. 만약에 그 기름에 쩔은 운전수 모자를 벗겨버린다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바보가 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네. 그만큼 그 모자는 그 사람을, 그 돌부처 같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사람 전체를, 육체의 맨 꼭대기인 머리 위에 서서 감독하면서, 그를 속세.. 더보기
펀치 드렁크, 러브..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독신자 북클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