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진이 나왔다. 벚꽃을 배경으로 학교 옥상에서 찍은 독사진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친구가 맞은편 건물 안에서 셔터를 눌러, 창문 주위의 네모난 어둠이 액자처럼 봄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봄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이 사진 좋다."
선배가 '일시 정지' 단추를 눌러 슬라이드 쇼 상태에서 자동으로 넘어가는 사진을 멈추게 했다.
"난 싫은데."
"왜?"
"이 가방 때문에요. 옷이랑 너무 안 어울리잖아요. 다리도 굵게 나오고."
나는 황토색 인조가죽 가방을 가리키며 투덜댔다. 당시 내게 하나밖에 없던 가방이라 아무 옷에나 줄기차게 들고 다닌 거였다.
"난 저 가방 때문에 이 사진이 좋은데."
(…)
"이 여자의 '생활'이 보여서."
_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中
'[言]common pla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빼앗김의 방관 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 빚짐을 감당할 수 없다, 故박혜정 - 이혜경, 길 위의 집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0) | 2018.11.13 |
---|---|
11월 13일, 故전태일,『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0) | 2018.11.13 |
누구나 알고 있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베르 카뮈, 이방인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0) | 2018.10.09 |
허심(虛心)의 세계를 선사해주는 가을, 마광수 - 독신자 북클럽,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0) | 2018.09.15 |
書通二酉, 단순한 책 상자가 되지 마라, 김풍기,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마음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독신자 북클럽, (0) | 2018.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