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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common place

書通二酉, 단순한 책 상자가 되지 마라, 김풍기,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마음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독신자 북클럽,



 가을이면 언제나 독서의 계절이라며 여기저기서 책 읽기를 권한다. 그렇지만 정작 독서량은 줄어든다는 통계가 있다. 더운 여름을 지나 날씨가 선선해지고 단풍이 천지를 채우니 놀기 좋은 때라서 그렇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계절이나 시간, 장소를 관계치 않는다. 좋은 책이 있으면 즐겁게 일고 그렇게 익힌 것을 삶 속에 실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좋은 독서가다.

 예전의 선비들은 책을 읽으면서 횟수를 헤아리곤 했다. 서산書算이라는 도구를 만들어서, 자신이 지금 몇 번째 읽고 있는지를 셌다. 한 번 읽고 그만둘 책이 있는가 하면 여러 차례 읽어서 삶의 지침으로 삼을 책도 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경서는 평생을 반복해서 읽어야 할 책이었다.

 조선 중기에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이라는 분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았다. 이 때문에 기억력이 좋지 않았던지 책들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그는 「독수기讀數記」라는 글을 남겼는데, 그 내용을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백이전佰夷傳』은 1억 1만 3천 번, 『노자전老子傳』 『보망장補亡章』 등은 2만 번, 『제책齊策』등은 1만 5천 번, 『획린해獲麟解』등은 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한다. 이 글의 뒷부분에서는 『중용』이나 『장자』, 『사기』 등도 많이 읽었지만 1만 번이 안 되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의 기록이 정확한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자손들이 열심히 글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은 글 속에 잘 남아 있다. 어떻든 초인적인 성실함 덕분에 김득신은 당대에 꼽아 주는 문인 관료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책이 매우 많고 학식이 풍부한 것을 일컫는 말로 '서통이유書通二酉'라는 것이 있다. '이유'는 중국의 대유산大酉山과 소유산小酉山을 말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소유산 꼭대기에는 석굴이 있는데 옛날부터 천여 권 이상의 책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책이 소유산과 대유산을 꿰뚫었다는 말을 통해서 독서량과 학식의 풍부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것과 상대되는 뜻의 '서록書簏'이라는 말도 있다. 책 상자라는 의미인데, 읽지는 않고 보관만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감동을 받는다면 좋은 독서를 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책을 읽고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보관용 책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꾸는 독서가 소중하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혹시 장식품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_김풍기,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마음 - 삶의 태도를 바꾸는 네 글자 공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