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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려면 꽃길로 가라
꽃길 중에서도
꽃이 지고 있는 길로 가라
움켜잡았던 욕망의 가지를 놓아버린 손처럼
홀가분한 꽃들이 바람의 길을 가는
그 길로 가라
꽃들은 그늘지고 어두운 곳까지 나풀나풀 다가가고
꽃이 진 자리는
어느 순간 당신 삶의 의미를 바꾸리라
그러면 오랜 굴레에서 풀린 듯
삶이 가볍고 경쾌하리라
그 길로 가다 보면
수밀도에 흠뻑 취할 날이 있으리
_조은,詩 「꽃이 지는 길」 전문
팍팍한 삶.
밖으로 두어보는 시선이나 가닿는 곳 뚜렷하지 않아 막막하니
안에서 이는 답답함을 누르고 눌러 재우려 애를 써도
틈 비집고 터져나오니 신음이요 비명과도 같은, 말이겠습니다.
하지만 그 한(恨)도 흥(興)으로 바꾸어 다시 힘을 내어보는 것이니
루쉰의 아Q와 김수영의 소시민 사이
가로놓인 외줄을 타는, 삶은 아슬아슬 위태롭지만
처연한 그 모습 그대로 또 아름답기만 합니다.
'꽃길만 걷자'
표현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을 흥으로 바꾼게 아닌가 생각, 해봤어요.
물론 정말 꽃길만 걷겠다면 과욕, 욕망의 범람.
제가 취하고자 남에게서 앗으려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으니
이야말로 사람(人) 사이[間]를 무너뜨리는 화근.
꽃길만 걷자며 말을
입에 담아 옮겨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탕에 자리한 기본 정서는
과욕 경계일 거라 믿습니다, 저는.
엘리어트와 같이 '잔인한 달'을 '4월'로 특정/국한할 수 있다는
자체가 복이라면 복 아닐까요.
우리네 처지야 연중 死月.
피기 전 숨 진 이들.
'이기는 싸움'에서 기꺼이 진 사람들.
수다한 이들의 죽음으로 닦은 길.
진 자리에 다시 피는 꽃.
이 꽃을 무어라 이르면 좋을까요.
희망? 민주? 이름을 무엇으로 하든
이르는 바를 (먼저 계산) 염두에 두지 않고
꽃은 이미 피어, 있네요..
꽃길만 걸어요.
다만 시인의 말처럼
'꽃이 지고 있는 길' 가는 것
두려워말아요.
물러서지 말아요, 우리.
Layer. 2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_김춘수,詩 「꽃」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