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人]visible

소원에서 발원, '실존주의자는 열정의 힘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미래' /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 김선우, 발원 - 사각공간




Layer. 1


  • (…) 실존주의자는 열정의 힘을 믿지 않습니다. (…) 반대로 그는 인간은 자신의 열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존주의자는 이 땅위에 주어진 그 어떤 징표 속에서 자신에게 방향을 일러줄 도움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란 자기 좋을 대로 징표를 해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존주의자는 인간은 그 어떤 뒷받침도, 그 어떤 도움도 없이 매 순간 인간을 발명하도록 선고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퐁주Ponge는 그의 매우 아름다운 글에서 "인간은 인간의 미래다 L'homme est l'avenir de l'homme"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다만 만약 우리가 미래는 하늘에 새겨져 있으며 신이 이 미래를 안다는 것으로 이 말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 이 말은 내가 환상을 갖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 자유롭네, 그러니 선택하게. 즉 발명하게, 라는 대답
  • (…)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며 또한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일 뿐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실존 이후에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기 때문에, 또 인간은 실존을 향한 이같은 도약 이후에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과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의 제1원칙입니다. (…) 이처럼 정말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인간은 자신이 지금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책임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실존주의의 첫걸음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지금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실존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말할 때, 이 말은 인간은 자신의 엄격한 개별성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모든 인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 만약 내가 체념이 결국 인간에게 적합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인간의 왕국이란 지상에는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면, 이때 나는 나 자신의 경우에만 앙가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모든 이를 위해서 체념하기를 원하고 있고, 따라서 나의 이 행동 방식은 인류 전체에 앙가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이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 나는 내가 선택하는 인간의 그 어떤 이미지를 창조해나갑니다. 즉 스스로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인간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_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中 





함께 가는 

▶ 소원(所願) : '나'는, 바람[願]이 거(居)하는 처소(處所).
▶ 발원(發願) : 눈-길, 손-길, 발-길

                    눈/손/발이 낸 '길' 따라 마음 건너니
▶ 바람직 : 저마다 '나'를 벗어나서 함께

               바라보는 그곳

               거기 맺히는

               비로소 드러나는,

               상(象/像) !!
 

빛난다 여김은 기실

상 스스로 내는 빛이라기보다

바라보는 이 눈:빛들의 합(合)

아닐지..





Layer. 2


"사람들이 모시는 불상엔 부처의 생명이 없습니다. 불상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 이는 출가한 스님들입니다. 스님들이 깨달음을 실천할 때 불상은 생명을 갖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의 실천에 온 생애를 바친 부처의 맨발은 사라지고 중생의 행복을 위한 바라밀행이 망각된 자리에 황금 좌대와 비단 가사만 펄럭입니다. 생명 없는 등상불(等像佛), 빈말이 된 부처님 말씀, 그게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

부처님은 신이 아니시다. 중생의 숭배를 받는 부처는 과연 기쁠 것인가. (…) 원효가 느끼는 부처는 중생의 숭배를 슬퍼하는 부처였다. 부처를 숭배하느라 허비하는 그 시간에 그대들 스스로 부처의 삶을 살기를 소원하라! 부처가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라! 부처의 행위로 세상을 장엄하라…….

자신 속에서 들리는 대답은 매번 분명했다

(…)

지금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니 부처님을 기리며 상을 만들어 부처님인 듯 여기고 공양 올리며 공덕 있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빌어야 할 곳은 부처의 상이 아닙니다. 부처의 상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자기에게 복이 오길 비는 것은 정작 부처님께서 슬퍼하실 일입니다. 멀쩡한 일주문을 벗겨 내고 여기에 칠할 금으로 먹을 것을 바꾸어 굶주린 백성들과 나누십시오. 그것이 부처님께서 알려 주신 바른 공양의 길입니다. 부처님의 바른 제자 되기를 소원하는 미욱한 소승 이렇게 전합니다.”

_김선우, 『발원(發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