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人]visible

'진짜'에 사로잡히지 않기, 오리진(Origin)은 본래 그 자리, 전에도 후에도 그저 있을 뿐 / 키틀러, 광학적 미디어 / 이경숙, 도덕경 / 진이정, 유고시 - 사각공간

Layer. 1




  • (…) 근대 초기의 새로운 화기火器와 더불어, 카메라 옵스큐라는 투시도법의 도입으로 요약되는 시각의 혁명을 개시했다. 알다시피 인간은 석기시대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브루넬레스키 이후에야 비로소 이미지 위에 그려지는 모든 요소들이 중앙에 구축된 단일한 소실점을 따라 정렬됐다. (…) 자크 라캉은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에서 프로이트가 완전히 간과했던 ‘응시’의 문제를 상세히 다뤘다. (…) 라캉은 헤겔과 마찬가지로, 예술과 (또는) 숭배의 가장 오래된 형태가 건축이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헤겔과 달리, 라캉은 이런 건축의 중심부에 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나 교회당 내부처럼) 시체가 있을 뿐임을 명확히 밝힌다. 이러한 시체는 자기가 머물 수 있는 텅 빈 공간, 그러니까 (브루넬레스키의 그림처럼) 어떤 구멍을 요구한다. 라캉은 심지어 신성한 존재 자체를 이처럼 건축구조적으로 열린 구멍, 어떤 부재의 현존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라캉의 논지가 도약한다. 이집트 피라미드가 잘 보여주듯이, 그런 구멍을 마련하고 유지 보수하는 데는 비용이 아주 많이 들 수 있다. 오로지 하나의 비非 장소를 에워싸기 위해 수백만 개의 돌이 쓰인다. 따라서 라캉은 투시도법이 그저 단순한 ‘절약’ 차원에서 발명됐다고 본다. 성스러운 것의 구멍을 건설하는 대신, 그것을 투시도법의 소실점으로 그리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다.
    _프리드리히 키틀러, 『광학적 미디어』 中 



기표는 빈 것이라니 '진짜'라 이름:이름도 마찬가지.
너나 할 것 없이 빈자리 취하려니 어느새 진:흙밭[泥田].
그런데

그렇게 집합 이룬 그 바깥, 거기서!
희한하게도(사실 당연한 거지만)

진짜라 여길 만한 어떤 것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냅니다, 드디어.

나타납니다, 비로소.

그제사 사람들,
개똥처럼 뭉쳐갖고 벌이던
진흙탕 싸움을 멈추고


고갤

들어


바라

봅니다.

그리곤

이르지요.


진짜가

나타났다.


?!

아닙니다.


진짜라고 여겨지는, 그이는

정작

'진짜'에서 달아나,버립니다.

그렇다고 정말 어디로 가는가 하면 전혀.

실은

전에도 후에도

그이는 제 자리에 있습니다.

어디 안 가고 그냥 있어요.

'진짜'이거나 말거나

이름의 그물에 사로잡히질 않습니다.





Layer. 2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

衆妙之門


도(는 그 이름을)를 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 이름이) 꼭(항상) 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이름으로 (어떤 것의)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꼭(항상) 그 이름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천지의 시작이니 따질 수 없고

(우리가)이름을 붙이면 만물의 모태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름을 붙이기 전(도의 이전)에는 (천지지시의) 묘함을 보아야 하지만

(※ 묘함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붙인 후(도의 이후)에야 그것의 요(실상계의 모습)를 파악할 수 있느니라.

이 두 가지는 똑같은 것인데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 이름뿐이니

(도 이전의 세계와 도 이후의 세계가)검기는 마찬가지여서

이것도 검고 저것도 검은 것이니

(도와 도 이전의 무엇은 같은 것이니라)

도는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니(지금부터 그것을 말하려 하느니)라.

_이경숙, 『노자를 웃긴 남자』 中





Layer. 3


(…) 조심할진저 호랑나빈 날지 못하는 켄터키 치킨관 격이 다르노라 켄터키 후라이드가 남반부를 휩쓰는 대신에 남조선 인민들은 켄터키주에 절을 세우노라 조선식 절을 세우노라 아메리카 합중국을 필마로 돌아다녀 봐도 어즈버 켄터키 산수만 한 곳이 없구나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한 조선 스타일 명당이로다 앗싸 양키들은 닭을 튀겨 팔고 신식민지 국독자*의 선승들은 노린내 나는 코배기들의 영혼을 튀긴다? 아메리카에서 부처가 나올작시면 다 나머지 조선 사람 덕인 줄이나 알아라

_진이정,詩 「앗싸 호랑나비」 中

(*국가독점자본주의)





Layer. 4


(…) 어느 평론가가 일갈했듯이 문학이란 좀 더 그럴듯한 망상을 찾아 헤매는 작업, 따라서 시인과 선승은 생래적으로 앙숙일 수밖에 없나니라 허나 시인은 선적인 것을 동경하고 선승은 오도 후에 한 편의 시를 남긴다 대문호라고 해봤댔자 큰 망상 덩어리고, 언어를 버려봤댔자 터져 나오는 건 하나의 시이다 벙어리가 되지 않을 바에야 시가 가장 경제적이라는 걸 습작 한 번 안 해본 선승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아는구나

_진이정,詩 「망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