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人]visible

서점, 생각[思]을 통해 깨달음[覺]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하는 공간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부평구

사각공간

 

‘산이 있어 오른다(*말로리 경)라고 이르는 바를 겨우 좀 알겠다 싶은 요즘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또한 책이 있어 읽었고 읽다 보니 자연스레 여기에 이른 것이거든요. 특별한 계기 내지 어떤 의도 없이. 어쩌면 이런 행보야말로 책의 힘 아닌가 합니다.’ 책에 매료되어 책을 쫓다 보니 어느덧 마흔 넷, 불혹을 넘겨서도 책의 매력에서만큼은 헤어나고 싶지 않아 동네서점 사각공간을 꾸렸다는 책방지기. 누가 맡긴 건 아니지만 아니 그래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바 이 소임, 어떻게 하면 독자 여러분 손에 이 책을 전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는 그는 서점인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자 오늘도 노력합니다.

 

사각공간

인천광역시 부평구 장제로249번길 16 1층

월~토 9시 ~ 22시, 일 20시 ~ 22시

032-215-0423

nemo-book.tistory.com

 

서점, 생각[思]을 통해 깨달음[覺]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하는 공간

기획은 한자로 企劃인데 이를 起劃으로 바꾸면 ‘획(劃)’이 불러일으킨다[起]는 의미로 새길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이를 독서라는 행위에 견주어 살피면, 사각(四角)의 물리적 프레임인 책장 속 활자는 박제라면 박제요 잠든 상태인데 이를 읽는 순간 잠든 활자들은 비로소 생명력을 다시금 발하니 진정 활자(活字)로 거듭나고 동시에 읽는 이 마음 가운데 이미 있는(그러나 역시 부지불식의 잠든 상태이던) 그 어떤 무엇인가를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보면 네모 곧 사각(四角)으로 마름된 기성(旣成), 견고하다 여겨지는 현실은 생각[思]과 깨달음[覺]을 통하면 얼마든지 가변적으로 바뀌는 셈이니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힘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바 생각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하는 공간이 곧 서점이니 사각공간(思覺空間)이라 지었습니다.

달리 생각지 않아 그렇지 일상, 매일 거듭하는 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하니 이게 참 묘합니다. 네 개의 귀퉁이[四角]로 구획, 획으로 구분된 말하자면 박스 안에서 꼬물대는 삶이라니 정말이지 부처님 손바닥 비유가 비유만으로 들리지 않는 요즘입니다. 네모진 건물부터 손에까지 들린 액정까지 물리적 프레임의 사각(四角)은 물론, 흔히 ‘고정관념’이라 이르는 그 무수한 ‘프레임’ ‘프레임’들. 생각하고 깨닫기를 걷기처럼 반복하는 인간 종(種)에게 이 (물리적) 프레임이란 멈춰 세워 머물도록[停滯] 만드니 둘러 씌워지는 이 격(格)을 계속해서 부수며[破] 나아가는 게 또한 사람의 운명이구나 싶기도 하고요. 인류의 진보(進步)는 사각(思覺)의 영구적인 변증 과정과 맞물린 것일 테니까요.

 

올해 4월 개점 후 관심 보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동네 분들께서 보여주시는 관심이 제 예상을 훌쩍 넘어선 바여서 누구보다 저 자신 놀랐습니다. 지나다 궁금해서 들어오는 분들, 인근 학교 학생은 물론 그리고 도서관 독서 모임 회원 등등. 근처에 부평구청이 있고 서울과의 접근성도 좋은 편이라 젊은 분들의 방문도 꾸준하고요. 전 연령대의 손님들이 찾아주십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간혹 이 서점의 특색은 무엇인가 묻는 분들 계신데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굳이 표하자면 특색 없음이 특색이랄까요. 이미 여러 동네서점주들께서 ‘큐레이션’이라는 말로 묶어 이를 수 있을 활동들, 곧 나름의 역량과 시각 등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책이 독자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를 내어 보이고 계시잖아요. 사실 독서량이 일천한 저로서는 그럴 정도는 못 되어서; 독자 여러분 안목을 존중하자는 마음도 있고. 협소한 공간 제약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자 신간 위주로 소량이자만 다종의 신간 서적을 구비하려 함이 유일한 의도라면 의도이겠습니다. 물론 판매로 이어져 자연스레 순환 이루면 좋겠지만. 아직 초기이기도 하고 마음 쓰진 않습니다.

찾는 분들이 관심을 보이실 만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우선하여 들입니다. 그런 한편 ‘이런 책은 어떠실까요’ 하는 마음을 담아 (신/구간 상관 않고) 이런저런 책 들이기를 조금씩 늘리고 있습니다.  느긋합니다. 제가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고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찾아주시는 분들과 함께 하다 보면 절로 자리잡겠거니 싶어서요. 이곳 사각공간을 찾아주시는 분들을 믿습니다!!

 

책 추천, 참 어렵습니다. 다만, 첨단의 쇄신을 부단히 거듭하는 시대이니만큼 온고지신(溫故知新)/법고창신(法古創新)을 말씀 드리고 싶어요.

고전이라 일컬어 지는 책을 다시 꺼내 살펴주시기를 거듭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와 같은 책.

힐링이나 위로(慰勞)부터 미니멀리즘은 물론 한편에서의 각자도생(各自圖生)까지 죄다 성장 주도 사회 이면에 고인 신음의 면면 아닌가 싶어요. 자기 소외와 소진 통해 고통 받는 개인 간 깊어만 가는 갈등. 무엇이든 지니고 취(取)하려는 ‘소유 형식’에 너무 익숙하여 있음은 아닌지 그 대척으로 존재 형식이란 어떠한 모습인지에 대한 저자의 깊은 통찰을 함께 하다 보면 절로 지금 처하여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되고 그에 멈추지 않고 거기서 돌이킬 수 있도록 돕기까지 하니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는 또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치니 이를테면 가까이는 돌아가신 법정 스님의 <무소유>나 소로우의 <월든>도 있겠고 6조 혜능 스님 말씀을 정리하여 담은 <육조단경> 등등. 멀미를 유발하는 세상 가운데에서 묵직한 자기 중심의 닻을 내려 단단히 중심 잡도록 돕는 책들이니 한번쯤 살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추천/소개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불경에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라고도 하고 여시아문(我聞如是)이라고도 이른 바 또 논어에선 술이부작(述而不作) 이라고 하였으니 생각하면 절로 멈칫하게 됩니다. 꺼내보아야 죄다 붙이는 말이어서 사족을 벗을 길 없으니. 보태어도 책이 잘 드러나면 괜찮겠지만 그도 아니니 주로 발췌 통해 소개를 돕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내용을 품고 있어요’ 이런 정도일까요. 현재 트위터(@comm_unique) 한 개 채널에만 일부 올려두던 것을 티스토리(nemo-book.tistory.com)으로 점차 넓혀 운영하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책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눈 밝은 분 적지 않으니 책이 품은 글 접하면 절로 독자 되시겠거니 싶고요(읽어라 당위로 접근하면 읽고 싶다가도 싫어지잖아요. 6^^;).

이 책의 문구가 저 책의 행간을 넘어 어떤 내용과 연결되며 길로 드러나는 모습을 경험하게 되면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표현은 더 이상 은유로만 남지 않지요.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길이 머릿속에서 생생한 지도로 구현될 때,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책과 바깥 현실 사이 경계를 지우며 나아가는 제 모습을 마주할 때의 쾌감. 이건 어떻게 말로 표현이 어렵겠습니다. 아무쪼록 여러 독자께서 직접 경험하여 보시길 마음 다해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저보다 더한 초보? 초심자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혹 모르니 안내의 방편으로 재미를 더하여 하나의 책을 읽을 때 어떤 부분에서 연상되는 다른 책의 부분을 발췌, 손편지 형태로 정리하여 끼워두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풀(pool)이 풍부해야 하니 저부터 부지런히 읽게 될 듯싶기도 해서요.

 

활자들의 모임에 초대합니다

2018년 책의 해를 맞아 전국 각지의 동네서점을 중심으로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심야책방의 날]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사각공간도 이에 동참, 해당일 심야 책방으로 운영합니다.

 

이런 상상을 해본 일이 있습니다. 제가 매일 서점 불을 끄고 나서면, 책 가운데 잠든 것처럼 가만히 있던 활자가 저희들끼리 파티라 할지 뭐 그런 모종의 일들을 벌일 것 같다는.

그래서 활자들이 벌이는 모임에 사람인 우리가 비밀리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살려 심야 책방 모임을 ‘활자들의 모임’이라 지어보았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활자들이 뭐라 이르는지 들어주는 게 예의이겠지요. 해서 30분이든 1시간이든 사각공간 안에 있는 어떤 책이든 또 평소 읽던 책을 들고 오셔도 되고 묵독 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이란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부정적이나 이날만큼은 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수다를 떠는 것이니만큼 방향을 특정하지 않는 것을 무겁게 여기려고요.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발하는 가운데 그것이 겉돌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모습,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각공간에서만큼은 적어도 이 심야 책방의 날만큼은 어떤 방향성도 맥락도 주도하려는 움직임 모두를 여읜 채로 그저 자유로웠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편히 오셔서 마음껏 이야기하셨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공부(工夫), 자기 속에 쉴 공간을 마련에 힘쓰는 건축노동자-되기

독서가 곧 공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실로 스스로 마치 건축노동현장서 땀 흘리는 사람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읽으면서 자기 내면을 다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건설 현장서 자재를 실어 나르며 쌓아 올리니 형체를 갖추는 건물처럼. 책 속 길이 실재이듯 내면의 아카이브 또한 실재이니 독서를 통해 내면에 구축한 공간이 튼튼할수록 세파(世波)에 잘 견딜 수 있음은 굳이 말로 이를 필요가 없을 듯싶습니다. 공부를 한다든지 하자든지 하는 표현은 어쩌면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공부(工夫)다. 공부(工夫)되자! 육체/정신 간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은 진정한 노동의 조화. 이것이 참 공부(工夫), 바람직한 상(像) 아닌가 해요.

 

책과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곳,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간 서로에게 조금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사각공간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꼭 저희 책방에서 책을 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저마다 이미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계기, 이를 마련해주는 책이 잘 전해지도록 돕는 것. 서점으로서 사각공간의 소임이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