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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visible

난민(難民) / 도처(到處), 난처(難處), 무주처(無住處)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Layer. 1

 

http://nemo-book.tistory.com/10

 

 

 

 

Layer. 2

 

(…) 지금 나는

온갖 종류의 아트만을 신뢰하지 않는다
죽으면, 그렇다…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거의 삼십 갑자가 흘렀다

그리고 나는 중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제 난 구체성의 신, 일상성의 보살만을 믿기로 한 것이다

덧없음의 지우개 앞에, 난 흑판처럼 선뜻 맨살을 내밀 뿐이다

아트만이 무너진 마당에

인생이 꿈이란 건, 그 얼마나 뻔한 비유인가

이제부터 나의 우파니샤드는

거꾸로 선 현실이다

 

_진이정,詩 「아트만의 나날들」 中

 

 

 

難民

 

 어차피(於此彼) 인간種이야말로 이 세계의 이물(異物)이자 끼어든 '덧'. '없음'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음이 이 삶의 종국.

 나면서[出生] 이미 육신이란 덫에 사로잡힌 것과 다름없어 육신 벗기까지 이 땅[地]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옥(獄)살이.

 그러니 지금 거하는 이곳이 다름아닌 지옥(地獄)일 터

 덧으로 또 이물로, 처지 매일반이나 쟁투는 끊이지 않고.

 게다가 쟁투를 벌이는 현장, 다름아닌 이 지옥(地獄).

 이야말로 블랙코미디 아닐지.

 여기 지금 이곳이 이미 아비()요 규환()으로 바로 그 지옥이건만 

 지옥을 새삼 달리 상상하는 인간은 참으로 기이한 種.

 

 生/滅, 삶과 죽음 사이 가로놓인 길[道/刀].

 다른 도리 알지 못해 그저 칼날 위를 줄지어 걸을(OMG 우파니샤드) 뿐인

 무수한 Sisyphus들.

 

 도처(到處), 눈 닿는 곳마다

 난처(難處)여서 방황과 배회를 거듭하는 유령들.

 이를 삶이라 여기고 이르니,

 정말이지 '다른 데를 열심히 살'고 있는게 아닌가.

 

 이러한 사정을 보다못해 무주처(無住處)에로의 shift를 가리킨 바

 적멸(寂滅)/입적(入寂), 멸(滅)로 적(寂)에 드는[入] 하나의 길을 보인 바

 소실/점(消失/點), 자기를 버려[消失] 윤회(輪廻)의 궁창에 메울 수 없는 구멍[點]을 뚫어놓으니

 비로소 '트루먼'이었음을 그리고 이 'Show'의 실체를 깨닫도록 도운 바

 석가요 예수이겠지만..

 

 하여도 지리멸렬의 개똥밭, 다시 찾기 거듭하니

 거듭남[入寂]보다

 면도날 위일지언정 이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믿는 것이 인간種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