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言]common place

고생하는 자는 영원히 고생하게 되어 있다 믿는 서글픈 체념의 촌놈들, 황현산, 사소한 부탁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살아서 그 고생을 하던 머슴은 왜 죽은 뒤에까지도 그 고생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이제 그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육신이 해방되었으니 혼이라도 편안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은 자못 엄숙하다. 인간의 운명을 그 핵심에서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19세기 중엽에 우리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파리 센강 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서점의 고서 더미에서 보들레르는 신기한 그림 한 장을 발견한다. 인체의 골격을 보여주기 위한 이 해부도는 앙상한 해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화가는 그림에 제 생각 하나를 덧붙여, 해골이 그 골격을 곧추세워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벌써 저 세상의 몸이 된 이 해골에게도 아직 이 세상의 고생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두 개의 시로 되어 있는 이 시의 뒷부분을 약간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서글픈 체념의 촌놈들아,

너희들의 등뼈나 껍질 벗겨진

그 근육의 온갖 노역으로,

파서 일구는 그 땅으로부터,


말하라, 납골당에서 뽑혀온 죄수들아,

어떤 괴이한 추수를

끌어낼 것이며, 어떤 농가의

광을 채워야 하는가?


너희들 (너무도 혹독한 운명의

무섭고도 명백한 상징!), 너희들이

보여주려는 바는, 무덤구덩이에서마저

약속된 잠이 보장된 것은 아니며,


허무가 우리에게 등돌리는 배반자이며,

모든 것이, 죽음마저, 우리를 속인다는 것이며,

슬프다! 영원무궁 변함없이,

우리는 필시


알지 못하는 어떤 나라에서

거친 땅의 껍질을 벗겨야 하며

우리의 피 흐르는 맨발로

무거운 보습을 밀어야만 한다는 것인가?


 해골들은 벌써 죽음의 세계, 허무의 세계에 들었지만, 죽음과 함께 영원한 휴식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어떤 나라에서 "거친 땅의 껍질을 벗겨야 하며", 피 흐르는 맨발로 보습을 미며 노역해야 한다.

 그들은 죽음 뒤에까지도 영원히 험한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부당한 처사에 대해 우리는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들 자신이 고생하는 자는 영원히 고생하게 되어 있다고 믿는 "서글픈 체념의 촌놈들"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_황현산, 『사소한 부탁』 서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