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임없이 그의 모습을 훔쳐보는 동안 나는 그의 완전무결한 환영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 소설풍의 서술에 불가결한 인물의 어떤 특징, 사랑받을 만한 버릇, 인물을 생생히 보여주는 몇몇 결점들, 그런 것을 기억 속의 오미에게서는 하나도 찾아낼 수 없다. 대신 나는 다른 무수히 많은 것을 찾아냈다. 그것은 거기에 있는 무한한 다양성과 미묘한 뉘앙스였다. 즉 나는 그에게서 이런 것들을 찾아냈다. 생명력의 완전함에 대한 정의를, 그의 눈썹을, 그의 이마를, 그의 눈을, 그의 코를, 그의 귀를, 그의 볼을, 그의 광대뼈를, 그의 입술을, 그의 턱을, 그의 목울대를, 그의 목구멍을, 그의 혈색을, 그의 피부색을, 그의 힘을, 그의 가슴을, 그의 손을, 그밖의 무수한 것들을.
그것을 바탕으로 도태가 이루어지고 일련의 기호(嗜好) 체계가 완성되었다. 내가 지적인 인간을 사랑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그의 탓이었다. 내가 안경을 쓴 동성에게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그이 탓이었다. 내가 힘과 흘러넘치는 피의 인상과 무지와 거친 손놀림과 건방진 말투와 어떠한 이지에도 파먹힌 구석이 없는 육체에 갖춰진 야만스러운 슬픔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탓이었다.
─ 그런데 이 발칙한 기호는 내게 처음부터 윤리적인 불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무릇 육체의 충동만큼 윤리적인 것은 없다. 이지를 통한 이해가 혼입되기 시작하면 나의 욕망은 당장 시들었다. 상대에게서 발견되는 아주 조금의 이지조차도 내게는 이성의 가치 판단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사랑과 같은 상호적인 작용에서는 상대에 대한 요구가 그대로 나 자신에 대한 요구가 되기 때문에, 상대의 무지를 원하는 마음은 일시적이나마 나의 절대적인 '이성에의 모반'을 요구했다. 그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까지고 이지의 침범을 당하지 않은 육체의 소유자, 즉 불량배, 잠수부, 병사, 어부 등을 그들과 어떤 말도 나누지 않도록 조심해가면서 열렬한 냉담함으로 멀리서 찬찬히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_미시마 유키오, 『가면의 고백』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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