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낯설은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라도 나는 실제 있는 그대로보다 더 보잘것 없는 사람으로 보였으면 싶다. 예를 들어서 실제로 어떤 나라를 가보아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모르는 척하고 싶다. 내게는 익숙한 어떤 사상을 누가 장황하게 이야기 한다면 나는 그런 것을 처음 듣는 것처럼 하고 싶다. 누가 나의 사회적 지위를 묻는다면 나는 지위를 낮추어 대답하고 싶다. 내가 실제로 감독이라면 인부라고 말하고 싶다. 유식하게 떠드는 사람의 말을 듣기만 할 뿐 이의를 말하지 않았으면 싶다. 나는 <격>이 낮은 사람들과 왕래하고 싶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파리는 다른 모든 대도시들이나 마찬가지로 귀중한 곳이다. 무엇인가 감출 것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파리를 좋아한다. 그곳에서는 이중 · 삼중 혹은 그 이상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확하게 그것은 아니다. 아무런 감출 것이 없을 때도 자기를 감출 수 있는 법이다.
파리에서는 아파트의 수위나 호텔의 수부계원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와도 접촉하는 일 없이 자기가 사는 동네 일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한달 동안이나 지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제대로 손상 당하지 않고 보전하려면 데카르트처럼 하루에 두번씩 수위나 호텔의 계원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일을 감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들의 주제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호기심에 선수를 치지 않으면 안된다. 심지어 그들에게 비밀 얘기를 털어놓는 일까지 불사하는 것이 좋고 비밀스러운 삶을 간직하고 싶으면 그럴수록 더욱 비밀얘기는 보다 솔직하고 소상한 것이 좋다. 그런 비밀얘기가 완전히 무해무득한 분야의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리하여 기분 내키는 대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예를 들어서 이름없는 어떤 카페의 한갓진 방에서 두시간씩이나 허송할 수도 있다. 그렇다. 정말 허송하는 것이다(런던에도 그런 카페들이 있다. 어떤 특정된 시간에만 문을 여는데 우리는 마치 도둑처럼 슬며시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마실 것을 날라다 주는 보이boy와 더불어 최근에 돌파된 비행기록에 대하여 한담을 한다. 소년은 아무런 의심도 없다. 자기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이런 비밀스러운 삶은 그러므로 반드시 부자연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 삶은 우리들 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의당 파스칼은 이런 것을 아니 했다는 둥 파스칼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라는 둥 떠들어대게 마련인 문학비평가와 대화를 하느니보다는 트럼프놀이를 하고 있는 미장이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파스칼과 더 가까와지는 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비밀스러운 삶이 반드시 우리들을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런 모든 것 중에서 특기해 둘 만큼 가장 재미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미천하다고 느끼고 싶어하는 욕구다.
_장 그르니에, 「케르겔렌 群島」 中
[言]common p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