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言]common place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환멸을 안경알 속에 숨겼다, 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 - 동네서점 사각공간

 좀 모자라는구나.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며 한숨이 흘러나왔다. '많이'가 아니라 '좀'이다. 그렇다면 됐다.

 어디다 쓴 거냐?

 친구들도 나눠주고, 군것질도 많이 했어요.

 나는 목소리에 진심을 실어 말했다. 그것은 내 귀에도 전혀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모자라는 건, 나중에 돈 벌어서 꼭 갚을게요.

 그래, 그런 자세가 중요한 거야.

 아버지의 두꺼운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워싱턴 대통령이 벚나무를 잘랐던 것 알지? 넌 큰사람이 될 거다. 난 확신을 갖고 있다.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쯤에서 끝났다면 모두에게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상 앞에 모든 식구들이 모이기를 기다려 고모는 그릇 깨지는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건 내 돈이 아니에요!

(…)

 진실이란, 저렇게 추한 것이로구나.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미처 생각 못하고 있었다. 내가 훔친 게 아니라면, 나머지 가족 중에 범인이 있다는 얘기였다. 누굴까. 동생 중의 누구? 어머니? 아버지? 아니면 사람 좋은 아주머니? 누군가가 어젯밤의 일을 낱낱이 보고 들으면서 끝까지 모른 척했던 것이다.

 말해봐. 이돈, 대체 어디서 난 거야?

 고모가 다그쳤다. 식구들의 시선이 나에게, 나의 입술에 쏠렸다.

(…)

 그날 저녁 나는 그 누군지 모를 사람의 거짓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로지 고모의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진실만을 환멸했다. 그 쓴 환멸을 나는 안경알 속에 숨겼다.


_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