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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common place

사람이 사람을 초월한 경지에서 사람으로 건너오는 경계, 성석제,소설,호랑이를 봤다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아사리의 사전적 정의


 불교에서, 스승이 되어 제자를 가르칠 만한 덕을 갖춘 고승을 일컫는 말. 불교에서는 제자를 교육하는 사람을 화상(和尙)과 아사리 둘로 나눈다. 화상은 세속의 부모처럼 전 생애를 일관하는 스승인 데 비해, 아사리는 교사와 같이 취학 때의 스승이므로 신분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제자의 궤범이 되어 가르치기 때문에 궤범사(軌範師) 또는 정행(正行)으로 의역한다. 인도의 소승불교에서는 5회 이상 안거(安居)를 계속하고 계율에 밝아 갈마(羯磨:수계의식)를 담당할 수 있는 승려를 이렇게 불렀다. 밀교(密敎)에서는 특히 전법관정(傳法灌頂)을 베푸는 스승을 대(大) 아사리라고 한다.



월간지 『전원주택 ─ 하늘과 물, 바람의 시』 편집입 권두언 '정치판을 다시 짜자' ─ 판에 관한 이야기


 불교에서 나와서 세속에서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은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판사판이다. 이판(理判)은 세속을 떠나 도를 닦는 일이고 사판(事判)은 절의 재산을 관리하고 맡아 처리하는 일인데 이 두 일을 하는 사람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면 '막다른 데에 이르러 더는 어찌할 수 없게 된 판'이 된다. 이럴 때 한 수 가르쳐서 정리를 할 수 있는 고승 아사리가 나서야 하는데, 그랬는데도 수습이 되지 않는 어지러운 판이 아사리판이다.

이와 비슷하게 어지러운 속세의 판은 난장판으로 여러 사람이 뒤섞여서 마구 떠들어대서 누구 말이 옳은지 분간이 되지 않는 판이다. 가장 어찌할 수 없는 판은 개판으로 몹시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엉망인 상태를 이른다. 어지러운 정도의 우열을 표시하면 이판사판<아사리판≤난장판<개판이 된다. 난장판과 개판 사이에는 '개판 5분 전'이 있을 수 있다. 이판사판이나 아사리판은 그래도 종교적인 의미가 있어 수습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난장판은 세속의 것이며 개판은 짐승의 몫이거나 판에도 못 미치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막가는 정치판 과연 어디에 속해 있는가.



소설가가 쓰기 시작한 소설 「호랑이를 본 장군」


 한 나그네가 있었다. 나그네는 나그네이므로 정처 없이 어딘가로 가야 할 운명이었다. 나그네는 무슨 일인가로 실의에 차 있었다. 수많은 일을 해왔으나 단 한 가지 일에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나날이 빚은 늘고 주어진 시간은 줄어드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 인간으로서 넘볼 수 없는 사랑을 희구한 죄를 짓고 산길을 헤매기로서니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걸 어쩌겠는가. 짐승이라면 먹을 걸 먹고 물을 마실 것이다. 잠자리를 찾고 지친 몸을 누일 것이다. 그러나 나그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간이었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며 전도를 모르는 길을 갔다. (…)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들뜬 정신도 가라앉고 생명을 유지해야겠다는 본능이 되살아났다.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초월한 경지에서 사람으로 건너오는 경계선에 서는 순간.

 짐승과 성자의 영혼과 개밥과 도토리가 뒤섞여 있어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색계(色界)를 돌아보는 그 순간.

 극한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 극한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아득한 경지에 있어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할 수도 있겠다는 사념이 침범하는 순간.

 떠나온 그 세계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


_성석제, 『호랑이를 봤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