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괜찮다. 돼지라서 괜찮다. 그러나 괜찮은가. 황현산, 거꾸로 선 화엄 세계, 사소한 부탁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돼지들은 이름이 없고, 얼굴이 없고, 눈 맞춰줄 눈이 없기에, 돼지떼는 좁은 축사에 갇혀도 괜찮고, 오물 속에 드러누워도 괜찮고, 땅속에 산 채로 파묻혀도 괜찮다. 죽어도 괜찮다. 돼지라서 괜찮다. 그러나 괜찮은가. "나는 돼지인 줄 모르는 돼지예요/두통이라는 뚱보 여자예요/구토라는 뚱보 여자의 그림자예요/날개도 없는 검은 기름가방이에요/제 몸을 제가 파먹는 돼지에요/전 세계의 부처들이 돌아앉아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 방/나는 겨드랑이에 털이 가득한 돌덩이에요"(「돼지禪」). 돼지들이 돼지라서 학살을 당할 때, 모욕을 받는 것은 생명 그 자체다. 생명이 모욕이고, 살아 있음이 고통이고, 삶이 저주인 곳, 그곳이 지옥이다. 거기서는 기도도 참선도 부활도 해탈도, 어느 것 하나 지옥의 놀음 아닌 것이 없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