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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common place/오늘의 날詩

나의 어제는.. 나의 청춘은 윤회하러 가버리고.. 김혜순,詩,나의 어제는 윤회하러 가버리고 - 동네서점 사각공간(思覺空間), 북클럽 [1인용 사막]


나의 청춘은 윤회하러 가버리고

나만 남았다

나랑 놀던 아저씨도 윤회하러 가버리고

나만 남았다

지난 겨울 폭설이 뒤덮은 지붕들은 윤회하러 가버리고

옷 벗은 지붕들만 남았다


흰 면사포, 흰 구두, 흰 축복, 흰 드레스, 흰 귀걸이, 윤회하러 가버리고

설거지할 것, 쓸어버릴 것, 닦아줄 것, 문댈 것, 지켜줄 것, 싸매줄 것, 쓸어버릴 것, 꿰매줄 것, 후후 불어줄 것, 안아줄 것, 핥아줄 것이 남았다.


활짝 핀 꽃마다 윤회하러 가버리고

바늘로 뚫어놓은 목구멍만 남았다


계단이 20 19 18 17 목이 꺾일 때마다

눈물은 17 18 19 20 눈금 위로 차올랐다


온종일 나는 윤회하러 가버리고

녹슨 과자 상자에서 툭 떨어진

옷 벗은 종이인형처럼

소파에 비스듬히 또 나만 남았다

에잇, 이것들이 정말 어디 갔어?

이것들이 윤회하러 가버리고

가서는 윤회의 골방마다 지들끼리 살림 차리고

희미한 기억 속에서 흐느끼는 저 아줌마

엄마를 마중하는 나만 남았다

나부끼는 저 아줌마

소복소복 걸음 걷는 저 아줌마

나보다 젊은 저 아줌마와 아줌마의 남편

둘이서 늙은 나와 손잡고 밤 벚꽃놀이 가는 길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은

또다시 윤회하러 가버리고


나를 한참 들여다보던

엄마 얼굴이 날개 한 장처럼 벗겨지고

우리 엄마 목구멍에서 내 목소리


플랑크톤처럼 풀어진 내 인생을 잡수시던

물고기들이 윤회하러 가버리고


그 물고기들 잡아 폭식하시던 팔뚝 굵은

저녁의 내가 윤회하러 가버리고


활짝 핀 식기들이 윤회하러 가버리고

창밖에 불타는 눈보라만 남았다


_김혜순,詩 「나의 어제는 윤회하러 가버리고」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