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모닥불의 불길을 바라보면서, 쥰코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문득 느꼈다. 단순치 않은 '무언가 깊이가 있는 것'이었다. 어떤 기분이 뭉친 덩어리라고 해야 좋을지, 관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생생하고 현실적인 중량감을 가진 것이었다. 그것은 쥰코의 몸 속을 천천히 달려 빠져 나갔고, 그리운 것 같은, 가슴을 옥죄는 것 같은 이상한 감촉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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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자유로워지려면 그렇게 되기 위한 공간을 이쪽에서 제대로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
그리고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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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는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다리미가 있는 풍경>, 사흘 전에 모두 끝냈어. 방 안에 다리미가 놓여 있지. 그저 그뿐인 그림이야."
"그걸 설명하는 게 왜 어렵다는 거죠?"
"그 '다리미 그림'은 실은 다리미가 아니기 때문이지."
쥰코는 미야케 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리미가 다리미가 아니라는 얘긴가요?"
"맞아."
"그러니까 그건 어떤 다른 것을 대신해 거기 놓여 있다는 거죠?"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그건 무엇인가를 대역으로 세우지 않고는 그릴 수 없다는 건가요?"
미야코 씨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_무라카미 하루키,「다리미가 있는 풍경」 中
다리미가 있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