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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common place

안전 제일로 살아온 사십 평생을 어떻게 뉘우쳐야 할까, 노예들아 너희들의 목소리를 들려다오, 김광규,시,오늘 - 동네서점 사각공간

(…)

매일 자라는 쇠 앞에 선다

문득 쇠 속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개구리 우는 소리

결코 잘못을 모르는 쇠가

나를 때때로 죄인으로 만든다

안전 제일로 살아온 사십 평생을

어떻게 뉘우쳐야 할까

참회한다 나는 기도해야 한다


(…)

오늘을 이기고 진 영리한 사내들이 모여

취하지 않기 위해 술 마시고

말하지 않기 위해 떠들어대고

통금 시간에 쫓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길 전봇대 옆에 먹은 것을 토하고

잠깐 소주처럼 맑은 눈물 흘리며

뿌옇게 빛나는 별을 바라본다


(…)

안타까운 몸짓으로 낮의 꿈을 꾼다

─성난 표정이라도 좋다

노예들아 너희들의 얼굴을 보여다오

욕설이라도 좋다

노예들아 너희들의 목소리를 들려다오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봐라

너희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꿈속에 들려오는 귀에 익은 소리를

우리들은 잠에서 깰 때마다 잊는다


_김광규,詩 「오늘」 中